우리나라를 사랑한 미국인 화가
[오마이뉴스 이충렬 기자] 바람이 많이 부는지, 돛포가 활짝 부푼 일곱척의 황포돛배가 노을 가득한 대동강 물길을 따라 유유히 내려옵니다. 참으로 장엄하게 하늘을 뒤덮은 붉은 노을입니다.
청천강에서 사금을 싣고 오는지, 낭림산에서 산나물과 땔나무를 싣고 오는지, 황해도 재령 땅으로 쌀을 사러 가는 사람들을 싣고 오는지, 황주로 사과 사러가는 과일장수들을 싣고 오는지, 맨 앞의 배를 자세히 보면 사람들을 제법 많이 타고 있습니다.
왼편으로 모란봉 을밀대가 보이니 다행히도 날이 저물기 전에 나루에 도착해,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거나 주막에 여장을 풀고 뜨거운 국밥 한그릇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인 화가의 목판화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민족의 서정적 감정을 잘 표현한 웅장한 서사시 같은 작품입니다.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첫부분 <창조> 창간호 1919년 2월.
릴리안 밀러(1895 - 1943). 일제 강점기 시기의 서울주재 미국영사의 딸로 1918년부터 우리나라를 소재로 한 작품을 그리거나 판화로 만들어,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약 40여 점을 남겼고, 그 중 몇점은 훌륭한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대규모 유작 전시회도 열렸고 평가작업도 어느정도 이루어졌지만, 그녀가 마음 속 깊이 사랑했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소규모 전시회조차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미국 화가이니 우리 근대미술사의 범주 속에 넣을 수 없고, 작품 또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게 거의 없으니, 릴리안 밀러와 우리나라의 인연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끝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녀는 "조선 백성을 탄압하는 일본을 증오한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사랑했고, 그 정신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소개한 '노을 속의 조선 황포돛배'에서 보이는 대동강 뿐 아니라, 한강, 금강산, 비원의 향원정, 농촌풍경 등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미국 영사 딸이라면, 나라를 잃은 식민지 백성들보다는 일본 사람들과 더 가깝게 교류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스케치북을 들고 우리나라 산천을 다니며 민초들의 삶의 모습에 관심을 두었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기에, 그녀의 작품 속에는 평범하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사실 당시 우리나라 화가들 중에는 대동강을 그린 화가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동강을 그린 화가는 당시 평양에서 활동하던 최신영이라는 화가가 그린 한점 외에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이 작품도 대동강을 그렸다기보다는 을밀대 밑에 있는 조각배 옆에서(위의 작품에서도 보입니다) 여인이 울고있는 모습을 그렸으니, 고려시대의 시인 정지상이 임과 이별하는 애달픈 마음을 노래한 '송인'을 그림으로 형상화했을 뿐, 대동강의 온전한 모습을 그리지는 못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대동강을 그린 작품으로는 단원 김홍도 그림으로 알려지고 있는 '평양감사선유도' 정도인데, 이 작품은 평양감사의 부임을 축하는 행사를 그린 기록화이기 때문에 대동강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혜원 신윤복과 김석신 등 조선후기의 화가들이 그린 '뱃놀이' 그림 역시 조선시대 선비들이 강에다 배를 띄워 기생, 악공들을 불러 뱃놀이(선유)하는 광경을 그린 작품이니, 어쩌면 릴리안 밀러 이전에는 대동강의 장엄한 풍광을 그린 우리나라 화가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해방 이후에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고 황창배 화백이 7-8년 전 쯤에 방북해서 대동강 풍경을 부감법(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을 그리는 화법)으로 그렸지만, 급히 보고 그리느라 스케치 범주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따라서 릴리안 밀러의 '조선의 황포돛배'는 비록 우리나라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나라 근대미술사의 좋은 참고 작품으로 자리매김 할 가치가 있는 것 같고, 실제로 이 작품은 1998년 8월 19일부터 1999년 1월 3일까지 LA 근교 패사디나의 패시픽 아시아 박물관에서 개최된 릴리안 밀러의 대규모 회고전 '두 세계의 사이에서' 전시도록의 앞뒤 표지화로 소개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강의 황포돛배'는 릴리안 밀러가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지 10년째 되던 해에 판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녀의 첫번째 작품은 1918년에 그린 비원의 '향원정'입니다. 그리고 1920년에는 어린 여자 아이들, 시골에서 빨래너는 모습, 고추 말리는 모습, 한강 어느 나루터에서 애기 업고 있는 아줌마 모습 등 주변적인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이 초기 작품들 중에는 수작이 거의 없고, 미국에 가서 미술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인 1927년부터 서사적 구조를 갖춘 좋은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황포돛배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었는지, 1920년부터 영어로 'Orange-Sailed Junk' 라고 부르며 비교적 많은 작품 속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시켰고, 1928년에 들어와 대동강의 황포돛배와 한강의 황포돛배에 사람과 짐을 채우면서 8년동안의 집념을 완성시켰습니다.
'한강은 조선에 있는 훌륭한 강 중의 하나로, 상업적 뱃길로 사용하기에 좋은 물살을 갖고 있다. 황포돛배들은 바람의 방향을 따라 강의 위 아래를 오가며 쌀과 다른 농산물을 운반하고, 좀 멀리까지 가서는 외국에서 오는 물품들을 싣고 오기도 한다. 돛포는 처음에는 벽돌색이지만 시간의 지나면서 기온의 변화로 황색으로 변한다. 석양이 질 무렵 강변의 소나무 사이에서 강물 위로 어우러지는 황포돛포 그림자와 소나무 솔잎의 그림자를 보면, '꽃이 흐르는 절'이라는 절 이름이 생각날 정도로 아름답다.
- 화가의 작업 메모.
이러한 화가의 메모를 볼 때, 위의 장소는 1960대까지 황포돛배 나루터가 있던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 나루 부근 그리고 '꽃이 흐르는 절'은 두물머리의 연꽃단지 근처의 어느 사찰이나 암자가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해봅니다.
내금강 백운동에 있던 마하연의 진경을 판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의 영문 제목이 'Makaen Monstery, Diamond Mountains, Korea'로 되어 있어 처음에는 정확히 어느 가람인지 알 수 없었는데, 금강산 사진자료들을 찾아보니, 마하연의 옛사진과 정확히 일치하였습니다.
마하연은 661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당시에는 화엄십찰에 드는 유명한 절이었지만 6·25 후 현재까지 절터만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칠불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참선 도량의 한 곳이었던 곳이고, 근대의 고승 만공선사가 1905년부터 3년동안 선을 지도하였고, 성철스님도 젊은 시절 이곳에서 용맹정진을 하였던 선원으로, 방이 53칸 있었던 기역자 형태의 가람입니다.
조선시대 숙종때의 유명한 문장가 농암 김창협은 <동유기>에서 마하연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마하연 등뒤에는 중향성이 있어 병풍을 친듯하며 앞에는 혈망봉, 담무갈 등 여러 봉우리들이 빙 둘려 역시 병풍을 친 듯하니 진실로 명가람이다. 뜰에는 삼나무 전나무 등이 울창하다. 그 중에는 줄기 곧고 껍질 붉고 잎은 삼나무 같은 것 한 그루가 있어 옛날부터 전해오기를 계수나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유홍준 엮음 <금강산>199쪽.
릴리안 밀러의 그림과 김창협의 글을 비교해보면,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이 절묘하게 일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어쩌면 그녀는 겸재 이래로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진경산수화의 경지를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마하연'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김윤겸의 1768년 작 '마하연', 김하종의 1815년 작 '마하연' 정도고 근현대 작품 중에서는 없으니, 릴리안 밀러의 '마하연' 역시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가족의 모습을 판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당시 어느 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을 그녀의 따뜻한 가슴으로 화폭에 옮겼기에 평화롭고 푸근한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사람들과 소를 작품의 가운데가 아니라 왼쪽에 배치시킨게, 어쩌면 편안히 휴식을 취할 집이 가까워 진다는 걸 암시하려는 화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녀는 이렇게 우리나라를 사랑했고, 강인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들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기며 아래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하얀 연꽃 같은 여인네들이 어떻게 그리 힘든 일들을 오래할 수 있는지, 조선의 여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화가의 작업 메모-
릴리안 밀러, 그녀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시작되자 하와이로 떠났고, 1943년 조선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이충렬 기자
청천강에서 사금을 싣고 오는지, 낭림산에서 산나물과 땔나무를 싣고 오는지, 황해도 재령 땅으로 쌀을 사러 가는 사람들을 싣고 오는지, 황주로 사과 사러가는 과일장수들을 싣고 오는지, 맨 앞의 배를 자세히 보면 사람들을 제법 많이 타고 있습니다.
왼편으로 모란봉 을밀대가 보이니 다행히도 날이 저물기 전에 나루에 도착해,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거나 주막에 여장을 풀고 뜨거운 국밥 한그릇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인 화가의 목판화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민족의 서정적 감정을 잘 표현한 웅장한 서사시 같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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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안 밀러 <노을 속의 조선 황포돛배> 36cm x 76cm 두쪽 연결 다색목판화 1928년 |
| ⓒ2006 이충렬 |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첫부분 <창조> 창간호 1919년 2월.
릴리안 밀러(1895 - 1943). 일제 강점기 시기의 서울주재 미국영사의 딸로 1918년부터 우리나라를 소재로 한 작품을 그리거나 판화로 만들어,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약 40여 점을 남겼고, 그 중 몇점은 훌륭한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대규모 유작 전시회도 열렸고 평가작업도 어느정도 이루어졌지만, 그녀가 마음 속 깊이 사랑했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소규모 전시회조차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미국 화가이니 우리 근대미술사의 범주 속에 넣을 수 없고, 작품 또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게 거의 없으니, 릴리안 밀러와 우리나라의 인연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끝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녀는 "조선 백성을 탄압하는 일본을 증오한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사랑했고, 그 정신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소개한 '노을 속의 조선 황포돛배'에서 보이는 대동강 뿐 아니라, 한강, 금강산, 비원의 향원정, 농촌풍경 등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미국 영사 딸이라면, 나라를 잃은 식민지 백성들보다는 일본 사람들과 더 가깝게 교류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스케치북을 들고 우리나라 산천을 다니며 민초들의 삶의 모습에 관심을 두었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기에, 그녀의 작품 속에는 평범하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사실 당시 우리나라 화가들 중에는 대동강을 그린 화가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동강을 그린 화가는 당시 평양에서 활동하던 최신영이라는 화가가 그린 한점 외에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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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신영 <대동강> 캔버스에 유채 크기 1927년 삭성회 제 2회 미술전람회 입선작 추정 |
| ⓒ2006 이충렬 |
조선시대에도 대동강을 그린 작품으로는 단원 김홍도 그림으로 알려지고 있는 '평양감사선유도' 정도인데, 이 작품은 평양감사의 부임을 축하는 행사를 그린 기록화이기 때문에 대동강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혜원 신윤복과 김석신 등 조선후기의 화가들이 그린 '뱃놀이' 그림 역시 조선시대 선비들이 강에다 배를 띄워 기생, 악공들을 불러 뱃놀이(선유)하는 광경을 그린 작품이니, 어쩌면 릴리안 밀러 이전에는 대동강의 장엄한 풍광을 그린 우리나라 화가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해방 이후에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고 황창배 화백이 7-8년 전 쯤에 방북해서 대동강 풍경을 부감법(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을 그리는 화법)으로 그렸지만, 급히 보고 그리느라 스케치 범주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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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회 도록 | |
| ⓒ2006 이충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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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안 밀러 <한강의 황포돛배> 46cm x 23cm 다색목판화 1928 년 |
| ⓒ2006 이충렬 |
그녀의 첫번째 작품은 1918년에 그린 비원의 '향원정'입니다. 그리고 1920년에는 어린 여자 아이들, 시골에서 빨래너는 모습, 고추 말리는 모습, 한강 어느 나루터에서 애기 업고 있는 아줌마 모습 등 주변적인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이 초기 작품들 중에는 수작이 거의 없고, 미국에 가서 미술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인 1927년부터 서사적 구조를 갖춘 좋은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황포돛배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었는지, 1920년부터 영어로 'Orange-Sailed Junk' 라고 부르며 비교적 많은 작품 속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시켰고, 1928년에 들어와 대동강의 황포돛배와 한강의 황포돛배에 사람과 짐을 채우면서 8년동안의 집념을 완성시켰습니다.
'한강은 조선에 있는 훌륭한 강 중의 하나로, 상업적 뱃길로 사용하기에 좋은 물살을 갖고 있다. 황포돛배들은 바람의 방향을 따라 강의 위 아래를 오가며 쌀과 다른 농산물을 운반하고, 좀 멀리까지 가서는 외국에서 오는 물품들을 싣고 오기도 한다. 돛포는 처음에는 벽돌색이지만 시간의 지나면서 기온의 변화로 황색으로 변한다. 석양이 질 무렵 강변의 소나무 사이에서 강물 위로 어우러지는 황포돛포 그림자와 소나무 솔잎의 그림자를 보면, '꽃이 흐르는 절'이라는 절 이름이 생각날 정도로 아름답다.
- 화가의 작업 메모.
이러한 화가의 메모를 볼 때, 위의 장소는 1960대까지 황포돛배 나루터가 있던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 나루 부근 그리고 '꽃이 흐르는 절'은 두물머리의 연꽃단지 근처의 어느 사찰이나 암자가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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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안 밀러 <마하연> 다색목판화 25 cm x 37cm 1928 년 |
| ⓒ2006 이충렬 |
마하연은 661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당시에는 화엄십찰에 드는 유명한 절이었지만 6·25 후 현재까지 절터만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칠불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참선 도량의 한 곳이었던 곳이고, 근대의 고승 만공선사가 1905년부터 3년동안 선을 지도하였고, 성철스님도 젊은 시절 이곳에서 용맹정진을 하였던 선원으로, 방이 53칸 있었던 기역자 형태의 가람입니다.
조선시대 숙종때의 유명한 문장가 농암 김창협은 <동유기>에서 마하연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마하연 등뒤에는 중향성이 있어 병풍을 친듯하며 앞에는 혈망봉, 담무갈 등 여러 봉우리들이 빙 둘려 역시 병풍을 친 듯하니 진실로 명가람이다. 뜰에는 삼나무 전나무 등이 울창하다. 그 중에는 줄기 곧고 껍질 붉고 잎은 삼나무 같은 것 한 그루가 있어 옛날부터 전해오기를 계수나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유홍준 엮음 <금강산>199쪽.
릴리안 밀러의 그림과 김창협의 글을 비교해보면,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이 절묘하게 일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어쩌면 그녀는 겸재 이래로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진경산수화의 경지를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마하연'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김윤겸의 1768년 작 '마하연', 김하종의 1815년 작 '마하연' 정도고 근현대 작품 중에서는 없으니, 릴리안 밀러의 '마하연' 역시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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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안 밀러 <조선의 가을 저녁> 다색목판화 22cm x 43cm 1928 년 |
| ⓒ2006 이충렬 |
사람들과 소를 작품의 가운데가 아니라 왼쪽에 배치시킨게, 어쩌면 편안히 휴식을 취할 집이 가까워 진다는 걸 암시하려는 화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녀는 이렇게 우리나라를 사랑했고, 강인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들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기며 아래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하얀 연꽃 같은 여인네들이 어떻게 그리 힘든 일들을 오래할 수 있는지, 조선의 여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화가의 작업 메모-
릴리안 밀러, 그녀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시작되자 하와이로 떠났고, 1943년 조선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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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안 밀러 <조선의 오래된 풍습> 다색목판화 23 cm x 18 cm 1928 년 |
| ⓒ2006 이충렬 |
/이충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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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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